실습실을 나서는 순간은 시원한 기운을 담고있는 복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남들보다는 좀 이르게 마친 실습은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던 나로써는 어린애들 장난과 같았지만 사실 내가 유리했던 부분은 비교적 익숙한 손놀림 정도였기에 작업을 마치지 못한 그들과 답답한 기분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캔커피를 손에 쥐고 창가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복도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와 겹처 구두가 시멘트 바닥을 괴롭히는 소리가 울려댔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머리를 쥐어 박으셨지만 담배를 다 피우면 돌아와서 도면을 검사맞으라는 말씀을 하셨을 뿐 딱히 일찍 실습을 마치고 쉬고있는 내게 나무라는 말씀을 하실 마음은 없으셨던것 같다.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었다. 밖으로는 공을 차고 있는 선배들이 소란스러웠다. 한참 수강을 들어야 할 시간임에도 공을 찬다는건 내가 다니고 있는 3류대의 의식수준이 빤하게 들어나는 부분이었다. 망연한 짜증이 선배들을 흘겨보게 만들었다. 소란스러운 선배들을 바보취급하며 담뱃재를 털어냈다.
담배가 시들어 갈때 즈음 짧은 눈의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다지 나를 똑바로 바라 볼 수는 없겠지... 내 시선은 낡아빠진 게시판을 향해 있었지만 바람이 불때마다 나부끼는 포스터 앞으로 서있는 그녀의 존재는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선배들의 얼빠진 장난에 깔깔거리고 있는 소리는 굉장히 미운 소리였다. 밉고, 그립고, 좋아하던 웃음소리, 그런것도 한참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들리는 척도 하기가 껄끄러웠다.
몇번의 눈길이 오갔다는 것은 왼쪽뺨의 간질거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담배를 입으로 가져갈 수록 연기가 머리속을 가득 채운듯 하얗게 물들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욱하게 춤을 추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건 기껏해야 미련정도 였지만 뻔한 오기로 인해 다시한번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눈을 마주칠 자신은 없었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여전히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는 멀리있는 운동장에 까지 닿을 목소리로 바뀌어 온 학교를 시끄럽게 울렸다. 당황할 틈을 주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 일제한 시선들이 나에게 집중됐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작은 짜증으로 일렁였지만 괜한 기대로 인해 짧은 순간 그녀의 시선을 의식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였을까... 투명 테이프으로 엉성하게 붙여 놓은 광고 포스터는 힘을 잃고 그녀의 다리 가장자리로 흘러 내렸고 의연하게 포스터를 주워든 그녀는 포스터를 대충 게시판에 얹어 놓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보지 않았다.
너무도 의식하는 태도에 기분 나쁜 쓴웃음이 맴돌았지만 아직 선들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칼은 예전보다 조금 더 길어 보이고 아직까지도 너무 잘 어울렸다. 얼마있지 않아서 그녀와 지금 그녀의 남자친구는 살가운 듯한 어깨동무로 학교 언덕을 내려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의 울림은 아직 풀리지 않은 여운에게 질책하듯 한층 더 날카롭고 시끄러웠다.
손 끝에 닿을듯 타들어간 담뱃불은 하염없이 연기를 내뿜어 시야를 감추었고
눈에서 따끔거리는 연기들은 아직 기억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흩날고 있었다.
P.S : 최근 이별을 맞은 저의 친구는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감출 수 없어서 속이 많이 상하는 듯 하더군요. 어줍잖은 우연들로 자꾸만 마주친다는 친구의 말에 아직 남은 미련이 정말 많이 자리 잡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미련이 남는 이별 후에 우연의 장난으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많이 떠올렸던 말입니다. 아직 아름다운, 예전보다도 아름다워진 모습에 무심코 흐르는 쓴웃음은 여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 앞의 이야기는 전부 픽션이구요... 심심해서 친구의 상황을 써본겁니다... 흠...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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