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Love Letter.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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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 (Love Letter.1995 이와이 슌지 作)

 

'아, 나의 사랑은 남쪽의 바람을 타고 달려가.'

 

영화 내내, 장면 속에 숨어 있는 노랫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눈치 채지 못한 노랫말이다. 노래를 불렀다기엔 부족해 보였다. 지나치듯 흥얼 거렸기에. 영상미에만 주목하며 보느라 귀를 닫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이 영화를 지금까지 세 번이나 감상하면서도, 첫 감상 이후 그러니까 약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저 가사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기에 산장 씬의 "그 녀석 마츠다 세이코라면 질색을 했었지?" 하는 대사를 이해 할 수 없이 지나쳤으리라. 두 번이나. 비로소 노래가 들린 것, 덕분에 영화에 대한 의구심이 남지 않는 다는 것. 그건 내 나이의 더해감의 덕일 수도, 일본어 실력이 한 층 높아진 덕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영화 속 행방 불분명하던 후지이의 연정은 완전히 눈 덮힌 산에 조난당해 감춰지고 말았다.

 

"뭐에요? 왜 다들 그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이츠키가 산에서 조난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야. 눈보라 때문에 시야가 하얀 적막인 상황에서, 절벽에 떨어지기 전 이츠키 목소리가 들려왔지. 그때 그 놈이 이 노래를 불렀었어."

 

마츠다 세이코는 8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아이돌 가수였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앙증맞음, 누가봐도 '귀여운 척'을 연기하는 그녀에게 일본인들은 속아 넘어감을 차처해가며 사랑했다. 일본 정점의 아이돌. 그만큼의 관심, 그만큼의 사랑은 역으로 그만큼의 비옹호 새력도 낳는 법. 그녀의 끊임이 없는 스캔들, 최고의 아이돌의 남성편력이 그녀의 미움을 낳는 산실이라 일축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녀석 마츠다 세이코라면 질색을 했었지?

 

죽기 전에 부른 노래에 대한 의문구. 눈보라가 치던 날 이츠키와 산에 올랐던 이들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 마지막 순간에 불렀던 노래는 왜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였을까. 이와이 슌지 본인에게 묻지 않는 이상 해답을 없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 본인도 생각없이 설정하지 아니하란 법도 없다, 하는 생각도 드는 참이다.

 

그럼에도 노랫말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의 중점 때문이다. 중학시절의 모습 밖에는 나오지 않는  후지이 이츠키. 그는 순수히 와타나베 히로코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중학교를 급작스레 전학하는 바람에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동명의 소녀 후지이 이츠키를 기억하며 와타나베 히로코에게 그 모습을 겹춰 보고있었던 것일까. 남쪽의 바람을 타고 달리는 사랑이 전달 된 행방이 모호하기에, 갈 곳을 잃은 애틋함이 닮은 얼굴의 두 여인에게 분산적으로 향하고만 만다. (실제로는 같은 배우가 두 사람을 모두 연기했다.) 후지이 이츠키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 후이지 이츠키란 여인과 고인이 된 후지이 이츠키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동시에 읊는 명대사 또한 그렇다.

 

"친애하는 후지이 이츠키씨. 몸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명의 소녀 후지이 이츠키와의 추억담에서 아련함은 더해진다. 3년간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두 사람. 여인 후지이 이츠키가 풀어 놓는 추억담은 사실 중학시절의 고충 썰풀이에 가깝다. 동성동명인 남녀이기에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항시 놀림을 당하고, 또 그로인해 두 사람이서 도서실 위원에 억지로 임명되는 둥. 소녀였던 이츠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좋지 않은 기억 뿐인 나날, 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름이 같아 민폐였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듯 시작된 회상 장면은, 좋지 않은 기억과는 상반되게도, 몰래 수줍어 하는 소녀 이츠키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 두 사람의 추억은 소년 후지이 이츠키가 도서실 대여카드 뒷장에 낚서를 해 놓은 소녀의 그림으로 결말 짓는다.

 

"와타나베님, 죄송합니다. 역시 마지막 편지는 쑥스러워 보낼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소년 이츠키의 그림을 보고 눈물 짓는 여인 이츠키의 장면에서 끝맺음을 하는 영화. 사랑의 이유가 불분명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마음이 끝까지 결말 지어지지 않은 마지막 이었으나, 소녀 이츠키가 추억담을 늘어 놓는 장면에서 왜 그리고 애잔한 눈으로 소년 이츠키를 바라 보았었는지, 수긍할 길을 주는 풋풋한 엔딩이었다.

 

 마치 죽음에 이를어서야, 죽기전 연인의 도움을 빌어 첫사랑을 고백하고 마는 듯한 이 몰지각한 감동에 나는 벌써 몇 번을 매료되었을까. 천국으로 발송 될 예정이었던 러브 레터. 나는 아직도 중학생 수준의 감성 밖에는 갖지 못하는 듯 싶다. 언젠가 한 번 또 보고 말겠지. 설원 속에서 여러장 옷을 덕지덕지 둘러 입은 나카야마 미호와 그녀의 단정하고 차분한 단발머리, 담담한 듯 갸냘픈 목소리. 이제는 맛 볼 수 없는 설렘. 그나마 가슴이 떨려오는 것도 중학생 시절의 기억을 되돌렸을 뿐인 듯.

 

아! 나의 사랑은 남쪽의 바람을 타고 달려가.

아!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BlogIcon 박생쥐 2020.03.26 17:44 신고 URL EDIT REPLY
너무 좋은 리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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