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Cultureholic/자작소설



밤사이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렸다. 인적 드문 박 씨 가문 가족산. 가을비에 신난 야생잡초들이 젖은 흙과 뒤엉켜 비린내를 풀풀 피웠다. 선선한 비단결 바람이 불었지만, 성깔 고약한 밤나무 놈들을 바람에 저항하며 촤르륵 가지를 흔들어 역성을 들었다. 비 온 뒤라서 인지 오늘은 저만치 멀리 떨어진 번화가의 십자가까지 훤히 보인다.

소은이는 청바지 밑단을 두텁게 세 번 접어 올렸다. 바지 끝단에 걸죽한 진흙 달고, 풀물로 염색하기 싫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신발 코를 바닥에 콩콩 쥐어박다, 끈을 다시 조여 맨 소은이는 무식하게 커다란 등산 가방을 들썩이며 어깨에 고쳐 걸었다. 겹처 두르고 있는 돗자리가 덩달아 흔들렸다. 산 입구에 있는 또랑에 빗물이 차 좁은 개울을 만들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반이나 담길까 말까 싶지만, 발을 담구면 금세 발등을 타고 신발 안에 물난리가 터질 것이다. 소은이는 씨알도 안 먹힐 흙더미며 자갈을 뿌려 허깨비 같은 징검다리를 만들어 개울물에 저항했지만, 역시나 택도 없었다. 산길 초입을 지나기도 전에 벌써 신발, 양말 할 것 없이 젖었다. 찔걱찔걱 발소리가 낮잠중인 산새들을 다 깨울까 겁이 날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은이는 가방끈을 다부지게 부여잡고 종종걸음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다져지지 않은 산의 경사가 미끄덩거렸다. 등산에는 어림 반푼도 없는 흰색 단화가 누렇고 뻘겋게 물이 들어갔다. 날카롭게 모난 돌들은 소은이 발목을 뽀각 꺾어 주려는 지, 연신 잘못된 위치에서 소은이를 기다렸고, 오를수록 가파라만 가는 경사는 손을 집어가며 기다시피 걷지 않으면 소은이를 뒤로 홀라당 넘겨버릴 듯 드셌다. 중턱 묫자리 들판에 올라 선 소은이의 양 무릎에는 흙 떼 구정이 져서, 말도 못하게 꼴사나웠고, 뽀샤시 한 손에는 흙부스러기가 진흙에 버무려져 끈쩍거리며 달랑렸다. 소은이는 팔뚝을 들어 코끝에 맺인 땀방울을 닦아냈다. 곧 이어질, 한숨과 동시에 뱉어지는 멘트를 벌써 몇 번이나 들었을까.

“자기, 나왔어.”

내가 죽고 3년. 내게 시간은 멈춰만 있었다. 철부지 같은 아내는 나만 빼놓고 홀라당 혼자 나이를 먹어 벌써 내일모래 서른. 나보다 한 살 많아진다. 나이먹으면서 물렁해지는 엉덩이 살 대신 손맛이 찰져가는지 달이 넘고 햇수가 깊어갈수록 가방 내용물이 무거워만 간다. 처음 찾을 때는 다리 아홉 뿐인 오징어 한 포에 머리랑 엉덩이 까제낀 사과 하나 배 하나, 소주 한 병으로 땡이더니, 이제는 고기산적에, 열무김치에, 낙지볶음, 동그랑땡, 계란말이. 오늘은 식빵에 치즈, 페퍼로니, 햄 조각 얹은 가정식 피자까지 추가했다. 여보, 자기야. 그거 내가 다 먹는 줄 알지? 스물아홉 꽉 찬 이십대가 취미처럼 찾을 곳 치고, 야생산은 너무 배타적이다. 밤이면 나무를 타고 내려온 거미들이 무덤가가 지들 놀이터인줄 알고 기어 다니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비둘기는 낙엽이 축구공인줄 알고 밤새 발길질하며 바스락바스락, 밤이슬 맞으러 마실 나온 지렁이는 또 어떤가, 살모사 똬리 튼 것 마냥 둥그렇게 몸을 감고 고개를 쳐드는데, 날름거리는 혀만 없었지 소름끼치는 건 아나콘다보다 더하지 싶다. 고린내 풍기는 노루랑 동네 똥강아지들은 또 어떻고. 소은이가 알 리가 없지. 그래서 인지 소은이는 음식을 펼쳐 놓고는 곧장 쪼르르 다가와 무덤 옆에 은박 돗자리를 펼친다. 나와 같이 남쪽으로 머리 방향을 맞춰 눕곤, 송장처럼 뻣뻣이 배에 손을 얹어 “내 자리.” 하고 소름끼치는 말을 읊는다.

“여편네, 어이 소은 여편네? 나이 스물아홉에 묫자리 봐두는 몹쓸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참나, 여보. 이런 황망한 산자락에 누가 있고 싶어 하겠어. 산짐승, 산벌레, 하다못해 풀들까지도 밤낮으로 깐죽데는게 얼마나 울화가 치밀 지 짐작이나 가? 여보야. 나는 거기 있지도 않아.” 하고 전해주고 싶다.

혹자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 믿는다. 혹자는 환생이라는 절묘한 시스템을 믿기도 하고. 죽어보니 안 것 하나. 죽음은 사람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영생 따위를 믿어 본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무참하리만치 아무것도 없는 것도 쓸쓸하긴 하다.

죽은 이가 수십 수백만의 빗방울이 되어 내린다는 미신이 있는 부족이 있었다. 그들에겐 사자의 몸을 겨드랑이 밑, 다리 가랑이 사이, 심지어는 발톱의 때까지도 정성스레 씻기는 것으로 장례가 시작된다. 볕에 말린 가볍고 곧은 노송나무 따위를 가로 세로로 겹치고, 질긴 풀줄기로 엮어 보통 사람 몸둥이 한 배 반 길이 통통배를 짜, 장례가 끝나면 그 배 위에 그를 혹은 그녀를 싣는 것으로 장례는 막바지에 다다른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발인이라고 할까. 질 좋은 기름을 듬뿍 먹인 짚더미 위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얹어 함께 강으로 흘려보내면 마지막이다. 그러면 고인은 해가 서른세 번 뜨고 서른세 번지는 시간 안에 소나기나 여우비의 모습을 빌려 잠시잠깐 고향땅 찾아 가족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방울 무리의 가장 선두를 선 녀석들이 먼저 정들었던 마을 한 복판에 한 번, 두 번 뜸들이 듯 입을 맞추고, 가족과 친인척들을 찾아 팔을 펼쳐 사방팔방에 비를 뿌린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힘껏 발을 구르며 솨아아 "내가 왔소." 하고 귀향 소식을 널리 전하기 위해. 나중에는 기세 꺽인 지각생 늦깍이 빗물들과 어울려 애인 혹은 친구, 가족들 지붕 처마에 걸려 기회를 엿보는 그들은 "안녕, 안녕히! 안녕, 안녕히!" 유가족들에게 전해지지 못할 목소리를 전하며 떠난다. 그것이 달과 별이 총총히 하늘에 수놓인 깊은 새벽이 되었든 등짝을 할퀴는 심술보 태양이 뜬 대낮이 되었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집에서 가장 값지고 예쁜 옷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대문과 창을 연다. 그리곤 생전 그가 좋아했던 음식을 식탁에 올려 오랜만에 돌아 온 반가운 사람 그리운 마음에 반겼다고 한다.

설마 내가 진짜로 죽을 줄은 모르고, 아내에게 농담 삼아 "내가 죽으면 한강 다리 밑에 수장 해줘. 비나 되어서 내려 보게." 부탁을 했었다. "자기 죽으면 나 혼자 어떻게 살아." 라고 말하던 철부지 소녀가 나의 사망이후 동사무소와 시청에 문의전화를 걸고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까지 받았던 건, 생전 예상치 못한 것들 이었다. 찾아가도 하필 이혼전문 변호사를 찾았던 것은 그렇게 감동스럽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내가 나를 얼마만큼 위했었는지 가늠 짐작이 될 수 있었던 좋은 일화였다. 막상 이리도 일찍 죽을 줄 알았다면, 수장 같은 말장난은 접어두고 날 잡아서 진지하게 말해 둘 것을 그랬다.

"자기야, 여기 앉아봐, 일루 와서 앉아. 자기, 사실 수장 된 시체는 물먹고 팅팅 붓는데, 얼마나 징그럽고 냄새나겠어? 수장은 그렇게 위생적인 장례법은 아니야, 나는 화장해줘 사회적으로도 수장이나 매장보다는 화장하는 것이 국토와 환경보전을 위해 이익이라잖아. 그리고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수장은 불법일거야, 자기 나 강물에 띄웠다가 사체유기죄로 잡혀갈지도 몰라. 그리고 또, 난 옛날부터 죽으면 꼭 화장되고 싶었었어.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이 비가 된다는 그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거야."

말할 걸 그랬다. 아내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을 나의 로망 혹은 믿음이라 여겻는지, 한동안 비 소식이 있는 날이면 우산 대신 우비를 챙겼다. 처녀 때처럼 투명화장법으로 곱게 치장하고, 결혼 후 큰맘먹고 장만해줬던 도합 백만 원 상당의 고급 정장과 7cm 킬힐에 명품벡을 세트로 중무장 한 채 밖에 서서 비를 기다렸다. 명품벡이 들린 반대 팔목에는 한 번 사용 된 적 없는 새 우비가 늘어져 있었다. 비싼 정장이니까, 비에 젖지 않게 그냥 집구석으로 돌아가 말려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생각 없이 뿌린 거짓말이란 씨앗을 아내가 거두었다. 내가 죽고 처음 내렸던 비가 아내가 잠들어있던, 야심한 시간에 소리도 없이 예보도 없이 찔끔 내렸던 것이 큰 연유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현관을 나서며 젖은 땅을 보고선 "여보." 하고 불렀던 통한의 속삭임에 웃음이 날 뻔했다. 아마도 웃을 수 있는 입술이 있었다면, 아내의 귀에 닿을 만큼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난 젖은 아스팔트 위에 지리하게 깔린 흑 먼지투성이의 구정물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내가 "여보."하고 불러준 나를 향한 목소리가 만든 짤막한 소리의 파동이 되 있을 뿐, 그녀의 목소리 “여보” 일 뿐이었다. 아내가 내가 없는 아스팔트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순간에 난 정처 없이 흔들리는 공기 속에 휘말려, 길 건너서 불어온 바람에 씻겨 날아가던 중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아내의 "여보." 라는 목소리 따위가 되어 세상에 나타났다.

내가 죽어봐서 아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죽음 그 너머에는 어둠을 느낄 시각이 없다. 침묵을 들을 청각도, 무감각을 느낄 촉각도 없다. 공기에 실려 떠다니는 21g의 발 없는 영혼이 되는 것도 아니요, 생각을 가진 무색무취무형태의 사념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는 동안 그리도 숱하게 들었던 사후세계의 영혼 한 조각 없이 두문불출 출몰 했던 곳은 아내의 목소리 뿐만도 아니었다. 밤이면 친구들 술자리에 불려나가 안주감이 되어 씹히는 일도 있었고, 어머니 따뜻한 손에 쓰다듬어지는 사진 속 고등학생이 되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되어 쓴 한숨에 섞여 뭉게뭉게 피어난 적도 있었고, 비보가 되어 무거운 침묵으로 옛 학교 동창들의 어께를 짓누른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자, 무존재였으며, 죽어 잃어버린 신체와 말, 생각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공기처럼 아내의 곁에 항상 머물렀다. 자의와는 상관없는 아내의 기억 속 추억이나, 행동 속 습관이 되어 불현 듯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했다. 생전에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아내가 나를 '그이' 라 부르는지 조차 몰랐지만, 내가 죽은 이후로 아내에게 나는 항상 그이였다.

새벽같이 이른 아침부터 집안이 부산스러웠다. 어깨선을 조금 넘는 짧은 머리 곱창 머리끈으로 야무지게 졸라 묶은 아내가 귀여운 곰이 눈을 땡그랗게 부라리는 담요와 집체만한 노랑 병아리 그림이 있는 담요를 서로 뒤엉키듯 감아 자동차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밑에 김밥 다섯줄이 담긴 은박지를 담은 검은 봉투를 마구잡이로 낑궈 넣었다. 범퍼 오른 이마가 깨져 함몰되고 이곳저곳 도색이 벗겨진 나의 애마, 흰색의 98년식 올뉴 아반떼. 아내는 자신을 위해 자동변속기가 달려있는 신차를 구입하길 원했었지만, 내가 뽑았을 신형 소나타를 사기 위해서 모아뒀던 돈은 대부분 우리의 각종 대소사 생활과 품위유지에 투자되었기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내는 클러치 위에 발을 올리며 볼을 부풀렸지만, 시동 한 번 꺼먹는 불상사 없이 유유히 차를 움직였다.

서해의 겨울바다, 특히나 오이도 같은 곳에는 깡패 같은 찬바람과 무한리필 조개구이 밖엔 없다. 자신이 그 증거라는 듯 가슴에 담요를 꼭 끌어안은 아내의 뒤에서 ‘조개구이가 무한’ 현수막이 지랄 맞게 펄럭이고 있었다. 5초가 머다 않고 훌쩍이는 아내의 코끝이 다홍빛으로 달아올라있었다. 함께 갔다면 분명, “그러니까, 겨울바다가 뭐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이리 벌벌 떨어!” 하고 핀잔을 줬을지 모른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감기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선하기만 했다. 모래사장에는 아내처럼 겨울바다 구경 왔던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잡쓰레기가 낭만처럼 굴러다녔고, 아내는 그 볼품없는 바닷가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재방 위에 곰탱이 담요 반 접어 깔고 앉아 병아리 담요를 머리끝까지 둘러맨 채 봉투에서 김밥이 담긴 은박지를 꺼내들었다. 병아리 담요 밖으로 빼꼼 내민 손가락 끝에서 하염없이 나부끼는 검정 봉투를 어찌해야 하나 덤벙이던 아내는 저 멀리 보이는 모래사장의 쓰레기들과 어울리라는 식으로 봉투를 냅다 던졌다.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인간에게 화가 났을까. 거친 바람을 대동한 검은 봉투가 아내의 뺨을 후려치듯 들러붙으며 푸드득 날갯짓을 했다. 한 자락 봉투에 불시공격을 받은 아내가 배도 한 척 떠다니지 않는 썰렁한 바다를 향해 만세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잠깐 당황해하는 사이에 씻겨나듯 봉투는 바람을 타고 겨울바다를 향해 몸을 띄웠다. 자유부양 하는 검은 비닐이 바다에 담굼질하기 시작한 태양을 스쳐 지나면서, 나는 스물넷의 젊은 청년이 되어, 아내의 잡념 속 파도를 넘실대는 유람선에 올라있었다.

젊은 날에 섬을 찾아 나선 일이 있었다. 하루 배가 두 번 정박하는 소박한 섬. 차를 타고 섬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시간 반 비슷하게 소요될 듯싶은 곳이었다. “관광지스럽지 않다.” 는 것이 애기같이 어리고 여렸던, 그리고 아직 호칭 상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첫마디였다. 확실히 민박이나 여관이 즐비해 보이지도 안았고, 횟집과 고깃집이 밤거리를 수놓는 풍경도 없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회를 못 먹는 아내를 위해 메뉴판 대신 거미줄이 천정에 붙은 중국집에서 요기를 하고, 잠깐 들렸다 가자는 식으로 바다를 거닐며 발을 적셨다. 시간이 어떻게 갔던가. 아마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무슨 이유론가 웃었고, 주제없이 수다를 떨었다, 땅거미가 저가는 짙은 하늘을 의식한건 찬바람이 옷을 여미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묻자 아내는 “어딜?" 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디는? 방에."
"응? 집에 가야지. 엄마, 아빠 기다리셔."
"집에? 우리가 타고 온 배가 오늘 마지막 배잖아."

아내는 가느다랗게 뜬 실눈을 흘기며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내의 속삭임이 살갗을 간질이 듯 내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내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해? 우리 어디서 자? 새우잡이 통통배라도 타고서 돌아가야하는 거 아니야?"

너스레를 떨곤 아내가 앞장서듯 모래사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등 뒤로 모은 아내의 손에는 누렇게 변색된 단화가 살랑거렸다. 나는 팬션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팬션은 인터넷으로 아내가 예약한 곳이었다.

"늑대."

아내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아마도 최대한 살벌하게 째려보려던 생각이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귀염상도 그런 앙증맞은 상이 없었다.

"여우. 불여우."
"손만 잡고 잘 거야."
"우리 한 방에서 자?"
"어우, 야~."

아내가 하는 '순진한 여자친구 꼬드겨 배 떠난 섬에 못된 짓할 궁리만 잔뜩 인 그렇고 그런 남자친구와 고립 된 어쩔 수 없는 하룻밤' 이란 상황극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더 애교스런 아내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예약한 것은 분명 민박이 아닌 팬션이었다. 뻑뻑해 잘 밀리지 않는 창문과 촌스러운 하늘색 꽃무늬 벽지, 벽지와 쌍으로 노는 파란지 퍼런지 때가 타고 보풀이 뭉친 이불이 구석에 처박힌 방 한 칸은 그냥 민박이라고, 아니 그냥 빈 방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듯 생각되었다. 성수기를 피해 떠난 유월 초의 팬션은 냉골방도 그런 냉골방이 따로 없었다. 보일러를 넣어달라고 요청을 하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젊은 것들이 라는 식으로 핀잔이란 핀잔은 다 떨어놓고 결과적으로 보일러를 땔 기름이 없다며 거절을 했다. 정말 나쁜 아줌마였다. 10분 가깝게 아줌마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아내는 벽에 붙어 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기름이 없어서 못 켜준데." 라고 전하며 아내의 옆자리에 앉자, 아내는 어깨를 으쓱할 뿐 더 다른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보일러 불 따위를 켜지 않았던 게 현명했다. 혹여 불이 들어왔다면 둘 다 타죽었을지도 모른다. 말도 없이 주욱 앉아있던 시간에 서로 볼의 뺨에 집혀진 불덩이가 수줍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만약 아내가 만들었던 상확극이 진짜였다면, 나는 그 밤을 위해서 뭐든지 했었겠지. 항구에 불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바다 한 복판 까지 헤엄을 쳐서 배 기름통에 구멍을 냈을 것이다. 빨리 달이 뜨도록 해에게 돌팔매질을 해서 쫓아냈을 것이다.

오이도의 바다에 핀 불덩이도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네 줄의 김밥이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위에서 얇상한 은박지 이불 덮은 채 온 몸을 쪼그라트렸다.

"자기, 나 갈게."

아내가 말했다. 여편네는 내가 바다에도 있는 줄 알았나보다. 당연한 소리지만, 사람만큼 쓸데없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동물이 없다. 내가 죽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오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후회할 것이다. 그 증거로 나는 벌벌 떨고 있는 아내의 작은 어깨도 감싸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감싸줬던 시간이 벌써 3년이나 전이었다.


친구 봉팔이가 집을 나선지 10분. 비가 내렸다. 그러기에 마누라가 “오늘 비온데.”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지. 마눌님 말씀 황금 같은 줄 모르고, “그까짓 비 내려 봐야 얼마나 내릴라고.” 말대꾸를 했니. 이 자식아. 어깨가 다 젖는다. 봉팔아.

공중도덕이라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봉팔이는 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부터 입에 담배를 물었다. 길을 지나는 처자마다 봉팔이의 몰상식함에 눈을 흘겼으나, 소용이 없었다. 입술에 그깟그깟 말버릇을 립밤처럼 바르고 다니는 놈답게, 지나는 사람들에게 코웃음을 쳤다. 무심한 척 보였던 봉팔이는 소리내어 “그깟 담배 냄새 좀 맡았다고 유난 떨기는.” 하고 공공연히 공중도덕을 무시해가며 걸었다. 남에 대한 예우라곤 쥐뿔도 없기에 농담 따먹기 할 친구로썬 일품이나, 상사 혹은 직장동료로선 폐품인 놈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봉팔이를 되돌아보는 이유가 오롯이 담배연기 하나 만은 아니었다. 시커먼 점퍼에 시커먼 바지, 씨이커먼 운동화. 키가 190cm도 넘는 놈이 옷을 그 모양으로 입고 다니니, 훤한 대낮이라 하나, 오늘같이 비 내리는 어두침침한 날에는 소도둑놈이나 노상강도처럼 경계하고 싶은 인상이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무섭다는 이 완곡한 표현을 좀 더 직선적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그렇다. 인상이 더럽기 때문이다. 더럽게 더럽기 때문이다. 이 강도 같은 놈의 발길이 멈춘 곳은 역시나, 시내의 은행. 이 놈시끼 역시 은행을 털어버릴 작정인가?

강도새끼 다운 외모와는 달리 봉팔이는 ATM 기기 앞에서 1500원짜리 소시지 같은 두툼한 손가락으로 비좁고 여리여리한 강화유리 ATM기 화면을 터치했다. 그리곤 ATM에 비치 된 돈 봉투에 후후 담배 입김을 토해내더니, 봉투 속으로 일만 원 권 돈뭉치를 밀어 넣었다. 봉팔이가 은행을 나섰을 때는 비 줄기가 더 굵어만 가고 있었다. 은행 문 앞에서 어정거리던 봉팔이는 팔을 엮어 식어가는 몸을 달랬다. 그러길 1, 2 분여 봉팔이는 이내 “쯧, 에이!” 하고 이유모를 신경질을 내며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가슴에 품은 돈뭉치를 여민 손이 계속해서 빗물을 맞았다. 돈뭉치와는 또 다른 종이장이 품에 담겨 고이고이 봉팔이의 가슴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봉현씨 왜 일 이세요?”
“헤헤, 소은씨 오랜만이에요.”

진짜 그렇게 소도둑 노무새끼마냥 웃지 마라. 우리 마누라 놀랜다, 이!

“허! 어머, 봉현씨 왜 다 젖었어요?”
“밖에 비가 와서요. 하하.”

아니, 우리 마누라 말뜻은 왜 비가 오면 우산을 사야겠다, 생각을 할 줄 모르냐고 이 봉팔아. 흔히들 무덤까지 가져 갈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라 함은 봉팔 친구. 죽기 전엔 일설 입 밖에 담지 않겠다는 약조가 아니 덥니까. 이 들 떨어진 죽마고우새끼야.

“이 돈이 다 뭐에요?”

소은이가 돈 봉투를 방바닥에 올려두며 물었다. 돈뭉치는 얼추 봐도 백만 원, 딱 봐도 백만 원이었다.

“제가 일전에 카드빚이 좀 생긴 일이 있어서요.”
“있었는데요?”
“그때, 저희 집사람한테 비밀로 하고 싶어서. 이놈한테 돈을 잠깐 빌렸었어요. 염치도 없죠. 녀석 떠난 지도 한참인데. 돌려드리는 게 늦었네요.”

소은이가 돈 봉투를 물끄럼 내려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서 백만 원이 비었었던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싶었다.

“몰랐네요. 정말로.”

소은이는 돈 봉투를 봉팔이 앞으로 슬쩍 밀었다. 종이봉투가 슬슬 끌리는 소리가 빗소리와
적막만이 가득한 거실 공기에 미미한 상처를 내고 있었다.

“갚지 않으셔도 되요. 그냥 그이가 빌려준 채로, 괜찮아요.”
“아니요. 오늘 녀석한테 줘야 할 건, 전부 다 가지고 왔습니다. 받아 주셔야 해요. 아니면 저 못 돌아갑니다.”

소은이는 베란다를 내다보았다. 활짝 열린 창으로 거센 비가 몰아쳤지만, 개의치 않은 듯 눈만 꿈뻑거릴 뿐이었다. 소은이는 금방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잘 다려 진 정장을 맵시 나게 차려 입고, 현관에는 우비를 걸어 두었다. 봉팔이는 말없는 아내 때문에 멋쩍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실에는 아직 내 사진이 걸린 액자가 그대로였다. 봉팔이는 먼지 한 점 앉아있지 않는 액자를 따라 내가 총각시절부터 쓰던 TV, 선반, 책꽂이 따위를 차례로 훑었다.

“하하, 조금만 기다리면 녀석이 퇴근하고 돌아올 것만 같네요.”
“왜요?”
“집이 그대로에요. 하나도 바뀌질 않았네요.”

소은이는 힘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적막이 무게를 더하며 거실바닥으로 스멀스멀 흘러내렸다. 그 공기에 숨이 막혀왔을까. 봉팔이는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뽑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집사람 다녀갔다고 들었어요.”

봉팔이에겐 집사람이겠으나, 소은이에겐 30년간을 알고 지낸 친동생이었다. 외모는 대충 비스무리하다는 소리를 듣는 법은 있어도, 사람 됨됨이가 닮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일이 없다. 얼마나 독한 말만 골라서 하는 여자인지.

“집사람. 집에 돌아와선, 한참을 울더라구요. 뭐라며 울었는지 짐작 하십니까?”
“얼굴은 괜찮았나요?”

소은이가 그날 처제의 뺨을 때렸었다. 어찌나 살벌하게 서로를 쏘아보는지, 아파트가 땅으로 꺼져 내려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는 처제를 나무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소은이를 위해주는 것 또한 처제였다. “이제 죽은 사람 같은 건 잊어버리라니까!” 그 앙칼졌던 고함소리. 기억한다. 나는 처제를 응원하고 있었다. 처제가 소은이 결혼반지를 빼앗아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지만 안았어도, 어쩌면 처제가 그 냉랭한 승부를 승리로 이끌었을지 몰랐다. 기적처럼 베란다 난간에 튕겨 나온 결혼반지를 보고, 이성을 잃은 소은이는 처제의 뺨을 때렸다. 아마도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동생에게 손 지검을 한 일은.

“그 놈이. 그 놈이 소은씨 데리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어떻게 하느냐고. 저한테 묻더라구요. 집사람이. 소은씨, 소은씨 정말 그 놈이 비가 되어서 돌아오면, 그래서 만나신다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봉현씨도 그 이야기 아시나 봐요?”
“알다마다요.”
“그럼, 이해가 빠르시겠네요. 그이는 산에 가서 묻혔잖아요.”
“그럼 왜 이렇게 기다리고 계세요. 강물에 수장한 것도 아닌데, 비가 되어 돌아오겠습니까? 저렇게 비도 들이치는데, 베란다 문을 다 열어두고.”

봉팔이가 베란다로 들이치는 비바람에 맞서며 창문을 닫으려 들자, 아내가 말렸다.

“그냥 두세요. 부탁드릴게요.”
“소은씨. 잘 생각해보세요.”

봉팔이는 결국 창을 닫지 못하고, 소은이에게 돌아섰다.

“잘 생각해보세요. 그이는 평소보다 조금 늦는 거 에요. 그이 무덤가로도 분명 수 십 수 백 번은 비가 왔을 거 에요. 남편은 그 빗물을 타고 산골자기로, 시냇물로, 강물로 언젠가 바다를 지나 비가 되어서 저에게 올 거 에요.”

처제가 함께였다면, “돌아오긴 개뿔이!” 하고 맞서줬을 텐데. 봉팔이는 망연자실 소은이를 내려다만 보고 있었다. 한 번 흐느낌 없이 소은이의 뺨을 타고 눈물이 굵직한 선을 그었다. 나는 그 순간 아내의 뺨에 내리는 하염없는 빗물과 함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이 되어 흘렀다. 봉팔이는 잠바의 가슴주머니에서 책을 한 권 빼들었다. 봉팔이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책은 어설프다 못해 유치해서 실소가 터지는 풀잎과 뭉게구름으로 채워진 커버, 촌스런 명조체 폰트로 박아 놓은 제목이 조화롭지 못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책에 사선으로 한 자씩 박혀있는 활자는 ‘사후세계’ 나는 그 제목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녀석이 소은씨와 결혼하기 전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아르바이트 일만 전전긍긍 했었죠. 술 집, 옷 집, 편의점.”
“아니요. 아닙니다. 놈은 글을 쓰고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소은이가 책에 손을 뻗어 책을 쥐었다. 봉팔이 품에서 여지껏 잠들어 있었던 책은 소은이 손길에 낮잠에서 깨어났다. 소은이가 낱장씩 촤르르르 책을 넘기자, 봉팔이 녀석이 말했다.

“그 놈 책입니다."
“그이가 책을 냈었어요?”
“아니요. 그 놈이 쓴 책입니다. 사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2년 전 쯤에 만든 책이죠. 출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햇수로 7년 전인가요.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제게 신춘문예 투고 작품을 들고 왔었던 일이, 예. 그 즈음일 겁니다. 소은씨와 그 놈 사이가 사뭇 진지해졌을 때였으니까요.”

봉팔이가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어, 책을 청했다. 별 이유도 없이 책을 받아 든 봉팔이 놈은 어울리지도 않는 흐린 웃음으로 책 중간 페이지를 내려다보았다.

“비가 되어 내리는 사람 이야기도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 놈이 매번 원고를 들고 제게 찾아 왔었죠.”
“봉현씨가 제일 친한 친구이니까요.”
“그러게요. 그게 꼬이고 꼬인 그 놈 팔자죠. 모르긴 몰라도, 그 놈 많이 답답했을 겁니다. 보여 줄만한 사람이라곤 저 정도고, 하지만 그런다 한들 제가 뭘 알아야죠. 전 글씨만 보면 졸기 바쁜 놈이거든요. 녀석이 들고 온 종이 뭉텅이들, 번번이 지겹다, 읽다 지친다. 하며 퇴짜를 놓은 게 몇 번이었는데요. 그랬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얄궂죠. 녀석이 세상 등지고 나서부터 뒤늦게 녀석이 써 놨던 글이 읽히기 시작 하더라 구요. 미리 읽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그 놈이 한 번만 읽어봐 달라고 했었는데.”

소은이가 창밖을 돌아보았다. 창문 유리에 붙어 송글송글 맺혀가는 빗방울에게 정말이야? 당신 글도 썼었어? 묻기라도 하는 듯.

“놈의 원고들을 다 읽고서, 친구들을 소집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컴퓨터 좀 만진다는 놈이 커버 그림을 그렸죠. 모두가 주머니 쌈지 돈을 털어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판사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이, 사설로도 요즘엔 얼마든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더라구요.”

소은이는 손등에 턱을 괴고 봉팔이 놈의 말을 계속 들었다. 봉팔이 놈은 누구하나 듣고 있는 사람조차 없다는 듯, 혼잣말처럼 계속해 입을 놀렸다.

“아! 좋더라! 이 새끼야. 재미있었다. 마지막에는 울었다. 니 새끼 글에 내가 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니 새끼 글을 읽는데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그 말을 제가, 못해줬어요. 그래서 책으로나마 놈에게 표시해 줄려구요. 나, 니가 쓴 글들 전부 읽었다. 한 토시도 놓이지 않고, 다 읽었다. 하구요. 이게 갖고 싶었지? 네가 쓴 책이 갖구싶었지? 하구요.”
“고마워요.”

소은이의 고맙다는 말을 들은 봉팔이가 얼굴을 굳혔다. 싸늘한 봉팔이 놈의 표정이 창밖의 비풍경과 칙칙한 분위기가 닮아있었다.

“아니요. 고마워하지 마세요. 전 소은씨에게 감사받을 이유 없습니다.”
“그이 대신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니요. 그 놈은 소은씨 때문에 글을 그만 쓴 것이니까, 소은씨에게 감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씀하세요?”
“그 녀석은 소은씨 때문에 불행했어요. 오랜 시간 불행해 했습니다. 저에게 이혼 상담까지 했었는걸요.”

소은이가 왼손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깨알 같은 다이아 부분을 꾹꾹 눌러주는 건, 소은이의 버릇이었다. 다이아 알을 한 번 빠트려 잃어버렸던 이후, 심심하면 소은이는 반지 알을 매만졌다.

“녀석이 결혼 이후, 마지막으로 원고를 가져오면서 그랬습니다. 이 원고는 보내지 않을래. 이 번에도 떨어지면, 나는 아쉬워서 정말 포기를 못할 거야. 죽어도 포기 못할 거야. 그러니까 이 원고는 보내지 않을래. 어차피 붙지도 못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알 수 있었어요. 그 녀석은 결혼 한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는 걸. 밤낮으로 일만하고, 소은씨와 앞으로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 지루했던 겁니다. 지친 겁니다.”

소은이의 굳은 표정이 밀랍처럼 한 결 같았다. 소은이가 책을 쥐고 일어서며 “식사 하실래요.” 물었으나, 봉팔이 놈은 “보내 주는 게 아닙니다. 놓아 주는 겁니다.”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릴 털며 일어났다.

나를 무엇이라 명명하면 좋을까. 암세포, 독, 하다못해 손에 박혀버린 가시바늘이라 칭해도 좋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서야 이치에 부합되는 것 아닌가. 병을 독으로 다스리는 한방치료처럼 나를 모함해서 소은이에게 나를 잊게 할 근거를 주자, 생각해 낸 것은 처제였다. 그리고 봉팔이는 처제가 준 대사를 읊었을 뿐, 봉팔이의 의견과 사실 관계는 일절 배제된 근거 없는 말이었다. 봉팔이 놈은 현관을 나서며 떨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죄 지었다. 생각하지 말렴. 봉팔아. 내가 정말 고맙다. 너무 고맙다. 나 좀 죽여주렴. 꼭 좀 죽여주렴. 우리 마누라 좀 살려주렴. 친구야.

결혼. 그 말에 눈앞이 컴컴해져 본 남자가 몇일까.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함께 생활해 나갈까. 나는 결혼이란 제도에 부정적이었다. 나는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벅찬 사람이었으니까. 결혼 생활이 꼭 틀에 박힌 내 상상 같지만도 않다는 것을 배웠지만, 결과가 이 모양이어선 배운 보람이 없다.

“결혼 할래?”

소은이가 물었었다.

“혼인 신고서에 우리 이름 쓰고, 증인이 사인해주면 결혼 할 수 있어.”

왜, 결혼이 하고 싶어? 왜 나야? 그럼 결혼식은? 그런 물음보다도 어째서 분식집에 앉아 김말이 튀김 먹다 그런 생각을 했냐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나도 참 들 떨어 졌지. 그런 생각을 튀김 먹던 몇 분 사이에 결론지어 입 밖으로 내었을까. 증인은 처제와 봉팔이 두 사람이었다. 양가부모님 허락도 없이 제출 된 혼인 신고서. 처제는 “미쳤어?” 라는 말을 미친 듯이 물었고, 봉팔이는 서명 란에 한자도 써야 되냐고 물었다. 장모님은 이런 결혼 무효다. 이런 능력 없는 놈에게 우리 소은이는 맡길 수 없다, 말씀 안으시고 “열심히 살아봐.” 담담히 응원하셨다. 장인께선 “너 정도면 됐지 뭐. 살 집은?” 이라 물으셨고, 엄마는 “소은이 같은 며느리면 환영이지!” 하셨고…, 하셨고.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장하다.” 고 하셨고, 친구들은 “축하한다. 부럽다.” 고 했다. 내가 뭘 알았겠는가. 소은이가 없었으면 나 따위가 뭐가 됐겠는가. 세상엔 그런 행복이 있었다고, 그런 만족감도 있다고, 알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 다음을 함께 못해 미안할 뿐이다.

“정말이야?”

봉팔이가 떠나고 횡 해진 거실이 심심하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가만 앉아버린 소은이는 몇 시간이고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곤 문득 생각난 듯, 속삭이는 듯 허공에 물었다.

“정말이야?”

당연히 아니지. 아니지만 믿으렴. 그 말은 아주아주 쓴 약 같은 거라서 몸에 좋단다. 그 말은 수술대의 매스처럼 날카롭고 차지만, 소은이 너를 치유해 준 단다. 믿어보렴. 믿어주렴.

처제가 소은이에게 다시 찾아온 것은 봉팔이가 다녀가고 사흘 만이었다. 전화는 모두 불통이었고, 집은 잠겨있었다. 지인들과의 연락도 없었다는 말에 처제는 혼비백산 소은이에게 들이쳤다. 처제 얼굴에는 핏기가 가셔 하얗게 질려있었고, 겁을 집어먹었는지 만사를 허둥대며 실수를 연발했다. 결국 자동잠금장치를 두 번이나 틀리게 입력하고 소은이를 발견한 처제는 질겁했다. 소은이는 숨도 쉬지 않는 이처럼 가만히 거실에 누워있었다. 열려있는 창으로 찬바람이 불었고, 주방에선 음식이 슬슬 상해가는 냄새가 풍겼다. 처제가 “언니!” 하고 큰 소리로 소은이를 불렀지만, 소은이는 대꾸가 없었다. 소은이는 걱정한 것처럼 죽어있지 않았으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랑 같이 살자. 언니랑 나랑 봉현이랑.”

처제의 말에 소은이는 고개 한 번 끄덕이지 않았다. 소은이는 움직이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 처제의 부축에도 늘어져 내렸다. 이후 처제는 빈번하게 소은이에게 다녀가길 반복하다가 결국 자신의 집에 소은이 방을 만들었다. 좁으면 외로워한다. 넓으면 공허할 것 같다며 고심의 고심 끝에 봉팔이와 쓰던 안방을 내줘가며 만든 방이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말도 없이 훌쩍 사라지곤 했다. 처제는 소은이가 사라질 적마다 사방을 헤매었으나, 행선지는 나와 소은이가 살던 아파트뿐이었다. 처제는 끈기 있게 소은이를 마중해 자신이 준비해 준 방으로 대리고 왔다. 그런 반복이 몇 달, 처제도 지쳤을까. 처제는 소은이가 아파트를 찾아들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집의 가구며, 가전 등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소한 수저며, 젓가락으로 시작해, 내 옷가지, 내 책들, 내 삶의 흔적들을 꼼꼼히 지워갔다.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는 집의 풍경을 소은이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을까. 매일 같이 아파트로 향하던 소은이의 발길이 이틀 간격으로, 사흘 나흘 간격으로 벌어지고, 시간이 흘러 가을로, 겨울로 접어들며 소은이는 어느새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수저를 들어 밥을 떠먹고,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처제와 외출을 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마지막에 내 흔적이라곤 아내가 왼손에 끼우고 있는 결혼반지 하나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어느 밤, 처제는 소은이가 잠든 사이 몰래 반지를 빼내었다. 다음날 이상하게도 소은이는 반지가 빠졌단 사실조차 모른다는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반지는 거의 10년을 그 왼손에 끼워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소은이는 반지가 빠졌단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봄. 꽃샘추위도 가시고 거리엔 새싹들이 고갤 들고 있었다. 길 건너마다 노랗게 핀 개나라며 화사하게 웃는 진달래들이 수를 놓았고, 때로는 시원한 듯 때로는 따뜻한 듯 느껴지는 바람이 거리를 매웠다. 소은이는 혼자서도 외출을 하며 적적할 때 즘 정처 없이 산책을 즐겼다. 오늘도 소은이는 혼자 걸음 길에 나섰다. 처제의 밤색 코트를 빌려 입고, 혹시 아직은 추울까 얇은 니트에 요즘 젊은 아이들처럼 다리에 꼭 맞는 청바지를 입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는 처제와 함께 미용실을 찾아 고불고불 멋을 내었다. 아아, 내가 저 여인에게 반하지 않고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그렇게 소은이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소은이는 집 근처 놀이터로 공원으로 선선히 걸었다. 큰 도로를 따라서 번화가까지 나갔다간 다시 발을 돌려 근처 도서관으로, 역 앞의 쇼핑상가로 계속해 걸었다. 멀리 뜬 햇살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소은이의 걸음을 등지고 부는 바람은 소은이의 발길을 가볍게만 했다.

그렇게 두 시간 쯤.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날이 좋아 해가 쨍한 날, 대낮의 여우비였다. 사람들은 소식 없었던 비에 건물 안으로 간판 밑으로 몸을 피했다. 비는 소리 없이 소은이의 머리와 어깨를 적셔왔다. 몸이 젖기 시작한 소은이는 걸음을 멈춰 섰다. 소은이는 왼손에 있어야 하는 반지를 찾듯 약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10년이 세월이 새겨놓은 하얗고 동그란 자국만 남은 자리가 쓸쓸하기만 했다. 그리고 소은이는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자기 기다렸어요. 잘 가요. 이렇게 보내서 미안해요. 잘 가요. 우리 다시 만나는 건 조금만 미룰게요.”

말을 마친 소은이는 발길을 돌려 처제의 집으로 향했다. 어째선지, 매 번 옆에서 보이듯 하던 소은이의 모습은 뒷모습으로만 남아있었다. 점차 멀어지는 소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있는 듯 했다.

마누라, 나를 보낼 거니? 나는 여기에 남아있으면 되는 거니? 축하해. 나는 지금 너무 기뻐, 당신은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를 짓고 있어. 잘 안 보이지? 하지만 이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야. 혹시 들리니? 들리지 않겠지만, 내가 칠 수 있는 가장 큰 손뼉을 치고 있어. 칠 수 없는 박수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할게. 길 가는 사람들. 저 여자를 좀 보세요. 저 여자는 이제 저를 모릅니다. 저를 잊었어요. 모두들 저를 대신해 박수를 보내주지 않을래요? 벅찬 환호로 그녀의 앞길을 축하해주실래요? 앞으로 그녀의 걸음걸음 행복만이 놓여있기를, 저를 잊는 그녀에게 축복을.

 

 

그리고 안녕,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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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2013.06.21 05:36 URL EDIT REPLY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잊혀지는 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BlogIcon 건빵 2013.09.19 16:15 URL EDIT REPLY
네이버에서 영혼의 과학적 증명을 검색해 보십시요. 논문이 있습니다. 읽고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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