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Cultureholic/이상한 생각

나의 아버님도 얼마 있지 않으면 환갑이시다. 커다란 등짝에 성큼성큼 내딧던 걸음, 스킨 화장품의 짙지만 익숙한 향이 언제부턴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밥을 드실때 가끔씩 수저를 농부식으로 움켜 잡으시는 보양세나 재미있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보실때 흥미를 느끼시며 얼굴 한가듯 웃음을 물고 계실때는 여전히 남다르게 친해지기 쉬웠던 아버지 그 모습 그대로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나의 아버지 였다면... 글쎄... 왠 죙일 헤드폰 한가득 노래소리를 흘리면서 컴퓨터나 처다보던 아들, 돼지고기 외에는 처다 볼 것없이 신맛만 느껴지는 어딘가 노랑색을 띄고 있는 가스랜지 위의 김치찌개... 거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빨래며 아들래미의 머리칼, 가끔 컴퓨터 저편으로 들리는 듯한 야동소리... 야동소리는 고사하고 그 야동마저 아들 친구놈들이 낄낄거리면서 보고 있는 광경이 가물가물해지면... 아무리 내 올곳고 바르고 착한 심성에도... 밥상을 수백번은 뒤집어 업지 않았을까...

직장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기어 오르고, 나름 사장,부장 소리 듣는 사람들은 20년 이상의 베테랑인 아버님의 눈에는 그닥 차지도 안을 것이다... 박봉에 아들은 대학으로 집에서는 세금으로 의외로 만만치 않은 옷값,술값, 차값, 기름값... 결국에는 한없이 낑낑대다가 아들놈이 조금 자립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둘씩 손을 놓고는 가까운 동네 부동산이나 친구분 아들이 경영하는 카센터 즈음에 들려 친구들과 옹기종기 고도리를 즐기며 참이슬이나 몇병 까보는게 낙인 인생이 되시겠지...

그리 나쁘지는 안겠다고 예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내 멋대로 그려본 나만의 환갑 쯤 리얼 라이프는... 음... 그렇다...
개인적으로 환갑 정도라면 귀찮게 옆에 누군가 따라 다니지는 안았으면 한다.

웬만해서는 자식을 낳아 키울 생각도 들지는 안는다... 나같은 녀석이 하나이상 늘어나 아장아장 기어다닌다면...
정말 차마 눈뜨고는 봐주지 못하겠지... 가끔 벌이는 칼바람의 설전도 반갑지 않을 것이고 방문 틀어 잠구고는 가끔 기어나와 저녁밥이나 챙겨먹자면 여드름 바짝세우고 눈알을 동그랗게 부라리며 처다보는 것도 정말 짜증나는 일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흠... 정없이 큰 덕일까? 아마 결혼생활도 원만하지는 안을 것이다... 결국에는 이꼴 저꼴 다보며 이혼도장을 두번은 파겠지... 법원 앞에서 고래고래 큰소리를 지르고... 한번쯤은 집구석에 혼자 꾸부정히 업드려 질질엉엉 울고짜고 친구들 모아 소주 댓병에 하소연 한포대를 늘어놓는 날도 있겠지... 아마...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돈은 많이 모아놨을 것이다... 아마... 위자료로 대충 띄어 먹히고, 온 방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도록 부부싸움을 벌였던것들의 합의금까지 전부 제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여생이 불편함 없을 만큼...

지금 살고있는 집 터에 새로운 집을 짓고 싶다. 그쯤이면 옆집 애들은 다들 나가 살겠지... 동네 사람이라고는 나, 옆의 옆집에 살고 있는 2살 위의 누나 정도... 옛날에는 핫팬츠에 나시티를 입을 만큼 긴다리와 잘록한 허리선을 자랑했지만... 그때는 나도 60인데... 그 누님은... 흠... 여기저기 많이 상하셨겠지...

나이는 60이라도 음악은 여전히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한없이 올드한 팝이 되었겠지만, 아직 그린데이나 라디오헤드는 반가운 멜로디일 것이다. 작은 단층주택을 만들어서 남은 돈의 한계까지 홈시어터와 최고급의 스테레오를 설비 하고싶다... 창문이 후덜거릴 만큼 볼륨 키를 돌려 놓으면 집밖에서도 노래 가사가 선명히 들릴 만큼...

초승달이 뜰때면 혼자서 궁상을 떨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시꺼먼 코코아 한잔에 설탕을 커다랗게 한스푼 떠서 아주 달달하게 타고는 커텐을 전부 펼처서 테라스 밖으로 떠있는 달빛을 바라볼때 한 가을 찬바람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스치는 기분을 만끽하며 언제부터 즐겨 들었는지 잊은 케렌 앤의 노래를 틀어 놓고는 적어도 30분이상 코코아의 맛을 음미하며 바람을 쐬고나면 아마도 그날 밤은 두꺼운 이불이 없이도 따뜻하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봄 햇살이 나른할 때면 체크무늬가 들어간 할아범 티가 팍팍나는 모자를 고른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짙은 밤색의 자켓을 걸치고 것보기에도 비싸보이는 박달나무에 갖은 꽃무늬가 수놓인 지팡이를 가쁜히 집어 들것이다. 로랙스의 2020년 버전의 클래식한 가죽시계의 짝퉁이 은근 슬쩍 옷소매 밖을 넘실대게 거닐고 다니면 괜시리 우쭐한 마음에 썩소라도 몇번 더 짓게 되지 않을까... 뒷주머니에는 옅게 향수를 묻힌 깔끔한 손수건을 차곡차곡 칼주름을 들여 포갠후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앞동네를 향해 산책을 다닐 것이다.

가끔 보이는 담배꽁초나 아이스크림의 껍데기 따위를 주워서는 근처 쓰레기 통에 넣는 선량함도 보여주고...
키가 커다란 느티나무 밑의 벤츠에서 시디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책이나 몇장 넘겨보고는 돌아 와야지...

밤중에는 강도가 유행하고 있으니까... 은은하게 노을이
물어진다 싶은 즈음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게 좋겠다...

음... 그렇게... 조용히...
보면 볼 수록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음악시디 몇장, 재미있다는 신간 몇권에 따뜻한 코코아한잔으로...
편하게 쉬다가... 그렇게 내 멋에 빠저서 아무도 모르게... 웃음짓고 살아야지...

'Cultureholic > 이상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순의 연결고리  (4) 2007.06.06
한국산 포도주 : 샤토마니  (2) 2007.05.26
환갑  (0) 2007.05.18
일요일  (0) 2007.05.13
짧다... 너무나 빠르다...  (5) 2007.04.26
심하게, 솔직하게, 살짝까진 무릎팍정신  (5) 2007.04.16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